솔직히 저는 시각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작년 장애인 시설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함께 가진 분이 참여하셨는데, 그때 제가 준비한 것들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촉각과 청각만으로 흙을 만지고 식물 향을 맡으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학습 환경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안질환별 학습환경, 실제로 적용해보니 달랐던 것들
시각장애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무홍채안(Aniridia)은 홍채가 자라지 않았거나 조금만 형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홍채란 빛의 양을 조절하는 카메라의 조리개 같은 역할을 하는 부분입니다(출처: 대한안과학회). 무홍채안 학생은 필요한 것보다 항상 많은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밝은 조명보다 약간 어두운 환경이 오히려 편합니다. 제가 수업할 때도 창가 쪽 조명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무홍채안 때문이었습니다.
백내장(Cataract)은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빛이 망막까지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는 질환입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 렌즈에 뿌연 막이 낀 것과 같습니다. 백내장 학생이 책을 읽을 때는 서견대를 사용해야 눈과 자료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고, 보행 교육도 철저히 해야 합니다. 특히 백내장 위치에 따라 조명 요구가 정반대인데, 수정체 주변에 혼탁이 있으면 고도 조명이 필요하지만 중심부에 혼탁이 있으면 낮은 조명이 필요합니다.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은 유전적 질환으로 망막 세포가 점진적으로 괴사하면서 야맹증이 나타나고 시야가 좁아지다가 결국 실명에 이르는 병입니다. 암순응(Dark Adaptation)이 잘 되지 않는데, 암순응이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갔을 때 눈이 적응하는 과정을 말합니다(출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제가 만났던 시각장애인 중에는 밝은 곳에서 눈이 부셔서 색안경을 쓰시는 분이 계셨는데, 망막색소변성의 특성 중 하나였습니다. 이 질환은 진행성이기 때문에 점자를 미리 익혀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예치료 현장에서 배운 환경 수정의 실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저는 교실과는 다른 환경 수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실에서는 좌석 위치를 창이 있는 방향으로 한 줄 정도 옮기고, 확대교과서나 확대독서기(CCTV)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확대독서기는 문자를 화면에 최대 100배까지 확대할 수 있고 색상 반전이나 대비 조절도 가능한 장비입니다. 여기서 CCTV란 Closed Circuit Television의 약자로, 저시력 학생이 읽기 과제를 오래 할 때 사용하는 전자 확대 장치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원예치료는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는 활동이라 시각보다는 촉각과 후각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시각 자료를 크게 출력해서 준비했는데, 정작 시각장애인분은 그것보다 "이 흙 느낌이 어떤지", "이 식물 향이 어떤지"를 더 궁금해하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학습 환경 수정이란 "시각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남은 감각을 최적화"하는 것이라는 걸요.
컴퓨터 환경도 중요합니다. 마우스 크기를 크게 하고 반응 속도를 느리게 조절하며, 고대비 화면 배색을 활용하면 저시력 학생이 훨씬 편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Ctrl과 마우스 휠로 글자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제가 수업 자료를 준비할 때도 색상 대비를 신경 쓰는데, 채도가 약한 색끼리는 이웃하지 않게 하고 같은 계열 색은 2도 이상 명도 차이를 둡니다.
광학 기구도 실제로 사용해보면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습니다. 망원경은 교실에서 판서를 보거나 버스 번호를 확인할 때 유용하고, 확대경은 짧은 시간 동안 문서를 읽을 때 좋습니다. 독서대는 눈과 자료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피로를 줄여주는데, 저시력 학생에게는 필수입니다. 타이포스코프(Typoscope)는 대비를 높이고 반사로 인한 눈부심을 막아주며 읽을 줄을 표시해줘서 학생이 읽던 줄을 잃지 않게 도와줍니다.
그날 수업에서 보조 선생님의 도움과 다른 이용자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원활한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평화롭게 미소 짓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도 느꼈습니다.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원과 전문 치료사 배치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치유가 된다는 것을요.
앞으로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서 책으로만 배우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의 차이를 더 체감하고 싶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고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원예치료사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결국 학습 환경 수정의 핵심은 장애를 "고쳐야 할 결함"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르게 배우는 방식"으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참고: 윤광보 특수교육학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