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예치료사로 일하며 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나는데, 부모님들께서 가장 먼저 물어보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정확히 어떤 장애인가요?" 솔직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적장애인지, 자폐스펙트럼장애인지, 아니면 단순 언어발달지연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느낀 건, 이 아이들은 어떤 진단명 안에 딱 담기지 않는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라는 점입니다.
진단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보여주는 오늘의 변화

전문가들은 발달장애를 크게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분류하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지적장애는 인지기능의 전반적인 지연을 특징으로 하고,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질적 결함을 핵심으로 하지만, 두 장애는 약 70% 정도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제가 원예치료 현장에서 만난 한 아이는 처음에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몇 개월 후 자폐스펙트럼 특성도 함께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혼란스러워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이름이 붙든, 우리 아이가 오늘 어제보다 식물에 관심을 보이고 제 눈을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친다면 그게 진짜 성장입니다."
발달 영역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언어발달이 느리면 인지발달도 영향을 받고, 인지기능이 약하면 사회성 발달도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원예치료에서 아이가 흙을 만지며 "부드러워"라고 말할 때, 그 순간 언어발달과 감각인지, 그리고 치료사와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처럼 발달은 통합적 과정이기에, 진단명에 집착하기보다는 아이가 지금 어떤 강점을 가졌고 어떤 부분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느린 성장이 곧 멈춘 발달은 아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상심하시는 순간은 1년간 열심히 치료했는데 발달검사 점수가 오히려 떨어졌을 때입니다. "선생님, 우리 애가 퇴행한 건가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해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발달지수(DQ, Developmental Quotient)와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가 상대적 수치라는 점입니다.
발달검사는 아이의 절대적 능력이 아니라 또래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를 측정합니다. 우리 아이가 분명히 성장했더라도, 같은 시기 다른 아이들이 더 빠르게 발달했다면 상대 점수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마치 달리기에서 내가 10초 단축했어도 다른 선수들이 20초 단축하면 등수가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이를 설명합니다. 토마토와 상추는 성장 속도가 다릅니다. 토마토가 열매를 맺기까지 석 달이 걸리지만, 상추는 한 달이면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토마토가 자라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각자의 계절과 속도가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만난 한 아이는 1년 전에는 물조리개를 들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식물에 물을 주고 흙의 촉촉함을 손으로 확인합니다. 검사 점수로는 2점이 떨어졌지만, 이 아이의 실질적 생활능력은 분명히 향상된 겁니다.
뇌 발달의 골든타임이 만 3세에서 만 5세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전 생애에 걸쳐 유지됩니다. 뇌는 늙어서도 새로운 신경연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신경과학의 정설입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 제 경험상으로도, 초등학교 고학년에 치료를 시작한 아이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중요한 건 시작 시기가 아니라 지속성입니다.
숫자가 아닌 아이 자체를 보는 원예치료의 철학
원예치료는 언어치료나 인지치료처럼 특정 영역만 집중적으로 훈련하지 않습니다. 대신 식물을 매개로 아이가 자연스럽게 여러 발달 영역을 통합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아이가 모종을 심을 때는 다음과 같은 발달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 손으로 흙을 쥐고 구멍을 파는 소근육 운동
- 모종 사이의 간격을 맞추는 공간 인지
- "여기 심으면 될까요?"라고 묻는 사회적 의사소통
-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기다리는 정서적 안정감
이런 통합적 자극이야말로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개입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검사실에서 긴장한 채 받는 표준화 검사보다 정원에서 자연스럽게 놀며 보이는 반응이 아이의 진짜 능력에 훨씬 가깝습니다.
한 아이의 사례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아이는 검사 상황에서는 지시를 거의 따르지 않아 IQ가 62로 측정됐지만, 원예치료 시간에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지난 시간에 했던 순서를 기억해서 도구를 꺼내고 물을 준비했습니다. 이건 분명 62라는 숫자가 담아내지 못하는 능력입니다. 자폐스펙트럼 특성상 검사자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지시에 반응하는 게 어려워서 실제보다 낮게 측정된 것입니다.
특수교육과 발달장애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진단명이나 검사 점수에 매달리기보다,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즐기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능 지수 1점을 올리기 위해 반복 훈련을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물조리개를 들고 "제가 할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진정한 통합교육의 가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발달장애, 지적장애, 자폐라는 이름은 결국 행정적 편의를 위해 나눈 것일 뿐, 실제 아이들은 이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속도로 자랍니다. 제가 원예치료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부모님이 "우리 아이가 집에서 화분에 물을 주더라고요"라고 말씀하실 때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아이만의 진짜 성장입니다. 정원은 1년 내내 열려 있고 식물은 매 순간 자라듯, 우리 아이들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의 진단명이 아니라 아이 자체를 보는 시선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